삼성전자(005930)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위탁생산(파운드리) 경쟁에서 세계 1위 업체인 대만 TSMC에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중화권 매체들이 축포를 터뜨리지만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에 오히려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그래픽카드 시리즈가 대형으로 출시된 탓에 삼성이 TSMC에 밀렸어도 다음번에는 ‘칩 크기 축소’가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7나노 GPU 양산체제를 갖춘 삼성으로서는 이번 패배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9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최신형 그래픽카드 ‘GTX 2080ti’ 등에 탑재되는 GPU를 TSMC가 단독으로 생산하기로 했다. 애초 엔비디아는 2년 만에 출시하는 이번 신제품에서 삼성의 10나노 GPU를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엔비디아의 최종 선택은 TSMC의 12나노 GPU였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안정적인 물량 확보와 단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12나노를 쓰면 칩의 크기는 커지지만 엔비디아는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10나노 GPU의 단가가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12나노보다는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화권에서는 이를 ‘삼성에 대한 TSMC의 승리’로 평가했다.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 2위’를 내세운 삼성전자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지난해 매출이 322억달러로 글로벌 점유율이 50.4%에 이른다. 삼성의 역량은 아직 이에 못 미쳐 지난해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점유율은 6.72%에 그친다. 대만의 한 매체는 “엔비디아의 결정으로 삼성의 스트레스가 조금 더 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단순히 삼성전자의 패배로 보기에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엔비디아가 2년 만에 내놓는 이번 그래픽카드 시리즈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급의 대형으로 출시되면서 다음 신제품에서는 반드시 크기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의 10나노 GPU를 건너뛰고 다음 시리즈에서 바로 7~8나노 GPU를 위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7나노 파운드리에서도 TSMC가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삼성에는 이것이 큰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TSMC는 이미 지난해 말 7나노 공정 시험 양산에 성공한 뒤 올해 2·4분기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삼성전자도 뒤이어 7나노 양산 체제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 반면 현재 파운드리 업계 2위인 글로벌파운드리(GF)는 7나노 공정 개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번 수주에는 패배한) 삼성의 7~8나노 GPU의 경쟁력은 충분하다”며 “기술력보다는 TSMC의 높은 점유율 탓에 결국 시장에서의 네트워크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생산 라인 중심으로 미세공정 분야에서 TSMC를 앞지르겠다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래픽카드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칩 생산에서도 선도업체인 엔비디아의 물량을 대량 수주할 경우 파운드리 업계에서 삼성의 위상은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S4P52AG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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