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의 위탁생산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업계 1위인 엔비디아가 삼성전자(005930)를 선택하며 7나노 공정 수주전은 극자외선(EUV) 공정을 앞세운 삼성전자와 TSMC 간 첨단 기술력과 수율을 다투는 경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에 7나노 EUV 공정을 기반으로 한 GPU 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업계 라이벌인 AMD가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와 손잡고 세계 최초의 7나노 공정 기반 GPU를 출시하겠다고 공식화하면서도 기존 불화아르곤(ArF) 방식과 EUV 중 어떤 방식을 이용할지 언급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TSMC가 이르면 하반기부터 EUV 공정 기반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만큼 AMD는 우선 기존 ArF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활용할 경우 기존 GPU보다 전력 효율 등에서 월등한 성능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삼성전자와 TSMC는 미세공정에서 각각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고가의 첨단 EUV 장비를 들이며 미세공정 개발에 시동을 건 반면 TSMC는 기존 ArF 방식으로 여러 번 패턴을 그리면서 미세공정을 구현했다. EUV는 멀티 패터닝 과정이 필요한 ArF보다 효율적으로 미세공정을 구현할 수 있지만 최신 기술인 만큼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EUV는 ArF보다 훨씬 짧은 파장으로 높은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지만 여기에 적합한 규모의 광원 소스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며 “ArF보다 여러 번 광원을 비춰줘야 하기 때문에 수율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현재 EUV를 활용하기에는 기술적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엔비디아는 지난해 튜링 아키텍처 기반의 신제품을 내놓을 때도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검토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이때도 높은 비용과 함께 삼성전자가 안정적인 수율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TSMC가 각자의 방식으로 7나노 공정의 수율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이번 수주전의 승패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지난 2000년대 후반에는 TSMC의 수율 문제로 ‘그래픽카드 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엔비디아와 그래픽카드 시장을 양분하고 있던 ATI 양사가 40나노 공정 신제품을 먼저 내놓기 위해 맞붙었지만 TSMC의 반도체 생산공정이 꽉 차 GPU를 제때 생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ATI는 현재 AMD 그래픽사업부로 합병된 상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50%대 이상의 점유율로 시장을 독식 중인 TSMC와 거의 대등하게 맞붙고 있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평가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글로벌 경기가 한풀 꺾인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IBM을 비롯한 거대 고객사를 잇따라 확보한 것은 의미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4.5%로 4위에서 2위까지 올라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이 EUV 공정을 선제 도입한 만큼 추후 3나노까지 이어지는 미세공정을 선도할 가능성도 있다. TSMC 역시 올 하반기부터 EUV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파운드리 업계에서 EUV로의 전환은 이미 정해진 노선이 된 상태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첨단 파운드리 기술의 진화가 중요하다”면서 “3나노 공정의 성능 검증을 마치고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339QL5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