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개사 VS 100개사.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국내 업체 수는 중국의 7% 남짓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조족지혈 수준이다. 이런 기반 차이는 4차 산업 혁명을 맞아 갈수록 설계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미래 반도체 경쟁에서 우리가 중국에 밀리는 결정적 이유가 되고 있다. 당장 돈이 되는 메모리에 역량이 편중된 탓에 반도체 강국 한국의 ‘반도체 포트폴리오’가 모래성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학 연계를 통한 인재 투자, 비메모리 분야에서 기업 간 긴밀한 협업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메모리 강국으로서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도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일종의 ‘사일로(silo·다른 조직과 교류·협업하지 않는 것)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며 비메모리 분야에서 중국에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는 냉정한 분석이다. 구 교수는 “국내 시장을 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와 시스템 반도체 업체 간에 연계가 전혀 안 되고 있다”며 “대만의 최대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만 해도 같은 중화권 기업인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의 도움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종선 홍익대 교수도 “교수는 물론 미래 엔지니어가 될 학생들도 메모리로만 몰릴 뿐 시스템 반도체를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비메모리 분야에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우수 인재가 없어 공공 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지경까지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의 두뇌 격인 인공지능(AI), 중앙처리장치(CPU) 등이 모두 시스템 반도체 영역인 만큼 설계기술 인력 양성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긴 호흡으로 엔지니어 풀을 넓혀 온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마치 몇 년 만에 내놓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런 계획을 세운 지 20~30년이 됐다”며 “‘지금 당장 안돼도 좋으니 이번에는 여기까지 목표로 하자’ 등의 중단기적 접근을 해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과제를 하더라도 ‘3년 안에 상용화해야 한다’는 식의 단기적 관점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연장선에서 “중장기 마스터 플랜에 따라 자금 지원, 산학연 연계 등에 나서야 한다”며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각오로 비메모리에서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 기업들도 비메모리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 이후 최초로 공식 방문한 곳도 경기 화성의 반도체 연구소 극자외선(EUV) 개발라인이었다. 극자외선 장비가 파운드리에 주로 쓰이는 핵심 장비라는 점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자회사 시스템아이씨를 통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등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태. 구 교수는 “대기업들의 설계자산(IP)이 외부에 더 공개되고, 연구소·대학 등에서 사장되고 있는 IP도 리모델링을 통해 상용화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인재 폴이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력 관리의 중요성도 새삼 거론됐다. 중국이 기술인력의 흡혈귀로서 인재 사냥에 적극적인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우리가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메모리 분야가 특히 그렇다. 송 교수는 “중국으로서는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S급 인재 스카우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인재의 처우 개선에 항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초 격차, 스피드 경영으로 메모리 분야 우위를 지켜나가야 한다”며 “한편으로는 중국이 최근 낸드에 이어 D램 개발도 임박한 만큼 특허 위반 소지 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박효정기자 shlee@sedaily.com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S4KZUXBR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