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포항 나노융합기술원 안에 위치한 예스파워테크닉스 반도체 생산라인. 빛으로 웨이퍼에 회로 모양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노광기 앞에서 연구원 2명이 공정 과정을 유심히 확인하고 있다. 노란 조명이 비치는 노광 공정 구간은 반도체 제조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웨이퍼에 닿는 빛이 회로 모양을 머금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포토마스크가 연구원들 뒤로 겹겹이 쌓여 있고, 300평대 팹을 꽉 채운 반도체 장비들이 공간을 가득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가동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예스파워테크닉스의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글로벌 SiC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토종' SiC 반도체 제조업체다. 모회사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회사 예스티의 투자를 받아 20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글로벌 SiC 반도체 시장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43명 임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설립 초 나노융합기술원 공용 팹 약 720여평 가운데 300여평 공간을 임차해 38종의 SiC 생산 설비를 갖췄다. 장비투자에만 120억원 이상이 들었다.
이 팹은 4~6인치 SiC 웨이퍼를 혼합해 월 최대 12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예스파워테크닉스가 자체 개발한 50종의 SiC 반도체를 생산한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국내 SiC 반도체 생태계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해 주목을 받았다. 한 업체의 무역사기로 SiC 반도체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회사는 약 2년간 기술 확보와 장비 구축 기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 단계에 접어든 지금 국내와 중국 내 여러 전자 업체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해외 시장의 경우 현재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터리 회사와의 협력도 검토하고 있다. 또 중국 반도체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고성능 컴퓨터 파워 시장에 진입하는 성과도 거뒀다.
외산 업체가 독식하고 있던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다. 주요 외산 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기성 SiC 제품과는 차별화한 신생 업체만의 '맞춤 제품' 생산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내 SiC 반도체 기술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일찌감치 예스파워테크닉스에 투자를 결정한 장동복 예스티 대표는 “국내 시장에서 우리 제품은 외산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납기, 맞춤 제품 생산, 물류 면에서 상당한 장점을 갖췄다”며 “2세대 제품 성능도 미국, 일본 주요 SiC 제조사 제품과 견줄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자신했다.
올해 예스파워테크닉스는 매출 50억원을 목표로 한다. 자체 개발한 SiC 칩 판매뿐 아니라 협력사 시제품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팹, 웨이퍼 비즈니스도 영위하면서 제품 생산 경험을 쌓아나갈 방침이다.
사업이 무르익으면 예스티 본사가 위치한 평택 사옥 옆 1500평 부지에 예스파워테크닉스 만의 자체 팹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예스티 주력 장비인 열제어 장치를 도입하면서 모회사와의 장비, 부품 기술 공유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SiC 반도체 관련 세 가지 국책 과제를 주간기관과 참여기관으로 수행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SiC 반도체 인프라나 국책 과제 지원 현황이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국내에 관련 기술이 뿌리내리려면 갈길이 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장동복 대표는 “SiC 생태계가 더 강해지려면 국내 기업들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부산테크노파크가 SiC 반도체 파운드리 팹을 구축하는 등 국내에도 SiC 시대를 맞이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구용서 단국대 교수는 “SiC 소자업체가 등장하고 파운드리 팹이 생기면서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지만 아직 인력이나 모듈·SiC 웨이퍼 소재 업체 성장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며 “소자뿐 아니라 관련 생태계 전반이 커나가야 더욱 빠른 속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했다.